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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May 21 - August 06, 2021

황대권의 야생초와 허윤희의 회화초

 

풀 한 포기가 아름다우려면 봄이 통째로 필요하다. 그 봄은 반드시 겨울 뒤에야 온다.

여기 두 풀이 있다. 황대권의 야생초와 허윤희의 회화초다. 두 풀은 서로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 한 풀은 분단의 그늘 깊은 옥방에서, 한 풀은 산업사회의 그늘 아래 피어났다.

 

황대권은 군사 권력의 폭압과 조작으로 누명을 쓰고 13년 2개월이라는 긴 겨울을 옥에서 보내면서 풀꽃을 그렸다. 그의 청춘 전부를 차압해 가버린 세월을 견디면서 그 풀꽃들은 차갑고 두꺼운 감옥 벽을 뚫고 이윽고 세상 밖으로 돋아났다. 그에게 풀은 그저 풀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걸 스스로 입증하는 일이자, 생명 그 자체를 향한 염원이고 구도행위였다. 한 점 이데올로기를 품고 있지 않은 그의 풀꽃들은 역설적이게도 분단체제의 그늘 아래서 가장 이념적인 생명력을 품고 있다. 그 이념이란 폭력과 억압에 맞서는 인간 생명의 거룩한 저항을 뜻한다. 이번 전시에서 황대권의 풀꽃 그림은 대중에게 처음 공개된다. 그는 풀꽃과 감옥 이야기를 쓴 <야생초 편지>(2002)로 널리 알려져 있다.

 

허윤희는 멸종을 그리는 화가다. 그는 산업사회 이후 사라져가고 있는 생명 중 풀꽃들에 집요하게 천착해왔다. 극히 정적인 존재인 풀꽃들은 그의 손을 거쳐 생명체의 멸종이 주는 치열한 위기의 미학으로 치환된다. 그의 풀꽃은 고통스러우면서도 뜨겁고 황홀하다. 마치 만지면 손을 델 것처럼. 허윤희에게 풀꽃은 분자이자 동시에 우주다. 생명의 정점인 꽃을 통해 그는 문명사의 그늘을 위태롭게 기록하고 있다. 이 불안한 아름다움이야말로 허윤희의 풀꽃이 거처하는 지점이다. 오래도록 멸종을 그림으로 채집해온 그는 이번 전시에서 9점 풀꽃 그림과 처음 공개하는 ‘나뭇잎 일기(2016)’ 76점을 통하여 거대 물질사회의 노정을 묻고 있다. 산업사회 이후 인간과 식물, 곧 인간사회와 자연의 관계다.

 

<풀> 전시는 분단체제가 잉태시킨 풀꽃과 산업사회가 형성시켜낸 풀꽃의 만남이자, 생명 자체를 기록한 풀꽃과 회화로 재구성된 풀꽃의 만남이고, 두 풀꽃 서로 다른 생존과 위기를 기록하고 증언하고자 하고 있다.

 

두 풀꽃의 만남은 다른 현실, 다른 상상력이 어떻게 한 공간에서 조우하는지를 살펴보는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풀>  황대권 허윤희 2인展

May 21 - August 06, 2021

PROJECT SPACE MIUM

서울시 종로구 평창20길 14, 1층

Tel. 02 3676 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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