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수 개인전 <동구리 20년> 세계일보 기사
또다른 진심·대중의 사랑… 상업과 예술의 이분법에 반기 든 두 작가

​김예진 기자

입력 : 2021-12-03 02:09:13 수정 : 2021-12-03 02:09:09 

‘동구리 작가’ 권기수… 평창동 ‘스페이스 미음’전

귀엽고 친숙해서 사랑받던 동구리
거칠고 삐딱한 드로잉 거쳐서 탄생
20여년간 드러낸 적 없던 민낯들
실상은 작가의 진짜 얼굴처럼 다가와

‘변방의 작가’ 변웅필… 청담동 ‘썸원’전

일반인은 알 수 없는 난해함
예술이란 이름으로 모른척 못해
상고서 대학진학, 유학까지 삶의 궤적
대중의 사랑 선택한 이유 드러내

 

미술관용 그림과 파는 그림. 상업적 작가와 미술관 작가. 그 이분법에 짱돌을 던지는 두 작가가 마침 평창동과 청담동에서 각각 개인전을 열고 있다. 평창동 미술벨트 한가운데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이는 ‘한국의 팝아트 1세대’라는, 정작 당사자는 원치 않지만 권위 높은 수식어가 붙는 권기수 작가다. 또 한 명은 “계속 화가로 사는 길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길뿐”이라고, 단순한 이치를 직시하라 강조하는 변웅필 작가다. 전시장을 찾아 두 ‘상업 화가’의 진심을 들어봤다.

◆‘동구리 20년’ 권기수의 또 다른 진심

‘너는 비웃었지만 나는 잘하고 있어’, ‘니가 원하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아니’, ‘노래를 부르고 싶었어 글을 쓰고 싶었어 춤을 추고 싶었어 그림을 그리고 있어’.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새로 문을 연 갤러리 ‘스페이스 미음’의 ‘동구리 20년 권기수 개인전’ 현장. 벽면을 가득 채운 글귀들은 가벼운 말장난 같아 재미나기도, 끓어오르는 분노와 답답함, 다짐 등을 담은 로커의 노래 같기도 하다.

검은 먹물로는 간단한 사람을 그리고, 주먹으로 이 문구들이 쓰였다. 주먹은 주황색 먹으로 주로 동양화에서 낙관을 찍을 때 쓰이는 것이다. 부적 같은 주술적 용도로도 쓰인다. 주먹의 힘일까, 유독 쨍하게 눈에 들어오는 문구에 담긴 다짐이나 혼잣말들이 나를 지키줄 부적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원래 그가 그리던 동구리 작품은 전혀 달랐다. 동구리는 그가 지난 20년간 사람을 동그라미와 선으로 단순화해 기호화한 것이다. 익명의 대중을 상징한 것인데, 무지개를 건너기도, 대나무에 매달리기도 하는 귀여운 동구리 모습이 대중에게 친숙한 이미지다. 동양사상 배경을 깔고, 여러 풍경 속에서 동구리가 노니는 모습은 전통 산수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소개돼 왔다. 컴퓨터그래픽을 동원해 세밀한 스케치를 뜨고, 다채로운 물감으로 치밀하게 완성한 회화가 그의 대표작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은 캔버스가 아닌 종이에, 그것도 사방으로 먹물이 튀고 흘러내린 드로잉이다. 마구잡이로 쓴 듯한 악필의 글씨체, 더 이상 귀엽고 천진난만해 보이지 않은 거친 동구리다.

 

 

 

 

실은 그는 지난 20년간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화선지에 먹으로 이런 드로잉을 하나 둘 쌓아갔다고 한다. 노래 한 곡을 틀어놓고, 그 곡이 끝날 때 딱 붓을 내려 놓았다고 한다. 마치 옛 선비들이 글씨를 쓰기 전에 산수화를 치면서 손을 풀었듯, 하루 노동에 앞서 손을 푸는 의식 같은 행위였다. 큐레이터들은 서울 연남동에 위치한 권 작가의 작업실에 갔다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손풀기 드로잉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 에너지 넘치는 날것의 동구리들이야말로, 권 작가의 진짜 얼굴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동구리 탄생 20주년 기념전에 이 드로잉들에만 집중한 전시를 기획한 계기다.

동구리를 그린 지 20년. 무게감이 남다른 전시에 드로잉을 내놓게 된 계기와 소회를 물었다. 그의 답은 지난 20년의 인생 고민이 녹아있는 ‘권기수표 철학’이었다.

“소소한 선택들이 모두 삐딱이 선택이었다. 지난 20년간 얼핏 보면 동구리로 문화상품을 만드는 등 상업적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미술시장의 주류로 산 듯하나, 실은 철저한 비주류였다. 상품 개발을 할 때도 욕을 많이 먹었다. 정교수 제안을 거절한 적도 있는데, 교수를 하기 싫었던 게 아니라, 스케줄상 어려워 거절했다. 바보 같은 선택이었지만, 그랬기 때문에 작품에 에너지를 쓸 수 있었다. 평범하지 않은 선택, 이성적이지 않은 선택을 해왔지만, 내 안에 목마름을 따라간 게 지나고 나면 더 좋은 보상으로 내게 왔다. 이번에도 미술관과 전시를 할 수도 있었지만 신생 갤러리를 택했다.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자는 계획이 희미한 미술관보다는, 보여주고자 하는 게 확실한 곳의 제안이 끌렸다.” 그의 표정이 유독 신나 보였다. 1월20일까지.
 

 

​기사링크: http://www.segye.com/newsView/20211202516618?OutUrl=naver

20211203_124823.png
20211203_124843.png